
소독약 냄새가 콧속 점막을 찌른다. 이 냄새는 칠십 년을 넘게 살아도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규칙적인 기계음. 삑, 삑. 심장 박동을 알리는 모니터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얇게 썰어내고 있었다. 블라인드 틈새로 주홍빛 노을이 길게 기어 들어와 내 하얀 환자복 위를 덮었다. 마치 무거운 담요 같았다.
"할머니, 눈부시죠? 블라인드 좀 더 내려드릴까요?"
간호사 청년, 김 군이 다가와 물었다. 링거액이 떨어지는 속도를 체크하는 그의 손놀림은 기계적이었지만, 목소리에는 물기가 서려 있었다. 나는 감기려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저었다.
"아니야. 놔두게. 해가... 참 붉구나."
내 목소리가 마른 낙엽 밟는 소리처럼 바스락거렸다. 김 군은 잠시 멈칫하더니, 침대 옆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텅 빈 병실을 울렸다.
"오늘따라 창밖을 많이 보시네요."
"글쎄다. 저 빛을 보고 있으니... 자꾸 헛것이 보여서."
나는 앙상하게 마른 손을 들어 허공을 휘적였다. 손등에 핀 검버섯이 노을빛을 받아 더 짙어 보였다.
"헛것이라뇨?"
"그림자 밟기 말이야."
"네?"
"아주 작은 계집애가 보여. 색동 가방을 메고, 운동화 끈도 제대로 못 묶어서 덜렁거리면서..."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병실 천장의 얼룩이 벚꽃 잎처럼 흩날리는 것 같았다.
"전신주가 서 있는 골목이었어.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날이었지. 나는 내 그림자를 잡아보겠다고 미친 듯이 뛰었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도, 그게 왜 그렇게 잡고 싶었는지."
김 군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 이불 자락을 정리해주었다.
"잡으셨어요?"
"못 잡았지. 그림자는 항상 발끝보다 한 뼘 더 앞에 있었으니까."
나는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기억은 징검다리처럼 건너뛰었다.
"그러다 문방구 앞에 멈춰 섰어. 대학 과 잠바를 입고 있었지. 뒤를 돌아봤는데... 참 이상하지. 분명 웃고 있었는데, 마음 한구석이 시큰했어. 그때 알았지. 더 이상 그림자 따위를 쫓을 나이가 아니라는 걸."
"그때부터 어른이 되신 거네요."
"어른..."
나는 그 단어를 입안에서 사탕처럼 굴려보았다. 달콤하기보다는 떫은맛이 났다.
"어른이 된다는 건, 빗소리를 듣는 밤이 많아진다는 뜻이야. 서른 즈음이었나. 책상 스탠드 하나만 켜놓고 멍하니 앉아 있었어. 창밖엔 비가 오고, 내 손엔 스무 살 적 사진이 들려 있었지. 사진 속 나는 환하게 웃는데, 거울 속 나는 찌들어 있더구나."

김 군의 시선이 내 눈동자가 아닌, 침대 맡에 놓인 낡은 가족사진으로 향했다.
"열심히 사셨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성공했다고?"
내가 말을 자르자 김 군이 당황한 듯 입을 다물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폐 깊은 곳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를 걷는 기분이었어.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고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데, 거리엔 아무도 없더구나. 네온사인 불빛만 바닥에 흥건했지. 차갑고, 파란색이었어. 외로움이란 게 색깔이 있다면 딱 그런 색일 게야."
"......"
"더 높이 올라가면 다를 줄 알았어. 오십 줄에 들어서서는 제법 근사한 사무실도 가졌지. 통유리 너머로 도시가 발아래 깔려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김 군."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고개를 돌려 김 군을 바라보았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그의 젊은 얼굴이 보였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텅 비어 있더구나. 그 화려한 야경이 내 속을 채워주진 못했어. 그냥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었지."
김 군은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차가운 내 피부로 스며들었다.
"후회하세요?"
그의 물음은 조심스러웠지만 예리했다. 나는 다시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을은 이제 거의 사그라들고, 병실 안에는 푸르스름한 어둠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니. 후회는 안 해. 그냥... 다시 한번 뛰어보고 싶을 뿐이야."
"어디로요?"
"그 골목길. 벚꽃 잎이 떨어지던 그 보도블록 위로."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대신,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낡은 운동화 바닥이 지면에 닿는 감각, 뺨을 스치는 봄바람, 그리고 내 발밑에서 춤추던 검은 그림자.
심박 모니터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삑... 삑.......
"이번엔...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내 입술 사이로 빠져나간 마지막 숨이 금빛 먼지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병실은 이제 완전한 고요에 잠겼다.
(숨이 끊어진 줄 알았던 찰나, 의식의 끈이 기적처럼 다시 이어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걷히고,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머, 여기가 어디래..."
매캐한 소독약 냄새 대신, 바싹 마른 낙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나는 어느새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는 포근한 니트 카디건이 덮여 있었고,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한 회색빛이었다. 시야가 맑았다. 안경 너머로 노란 은행잎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저만치서 젊은 연인이 까르르 웃으며 지나갔다. 예전 같았으면 그 젊음이 시리도록 부러웠을 텐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했다. 나는 그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넉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좋을 때다. 참 예쁜 시절이야."
바람이 불 때마다 시간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장면이 물감 번지듯 바뀌었다.
이번에는 창가였다. 머리는 이제 완전히 하얗게 세어 있었다. 내 손은 투박한 질그릇 화병에 프리지어 한 다발을 꽂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거실 마룻바닥에 긴 사각형을 그렸다. 그 빛기둥 속에서 먼지들이 금가루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꽃 줄기 하나를 다듬는 데에도 한참의 시간을 들였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꽃잎의 보드라운 감촉, 물이 담긴 화병의 차가운 온도. 그 사소한 것들이 가슴이 아릴 만큼 고마웠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오후구나."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고개를 돌리자, 낡은 경대가 눈에 들어왔다. 거울 속에는 낯선 노파가 앉아 있었다. 깊게 패인 주름, 앙상한 어깨 위에 걸쳐진 숄. 나는 떨리는 손을 들어 거울 속 내 뺨을 어루만졌다.
"짧았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탄식이 아니었다. 그저 담담한 확인이었다. 팔십 년 세월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렸다는 사실이, 그 거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손을 꽉 잡는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 들리세요? 제 손 느껴지세요?"
김 군의 다급한 목소리가 환영을 뚫고 들어왔다.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렸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김 군이 내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내 손은 장작처럼 거칠었다.
나는 그 온기에 기대어, 아주 오래전 놓쳐버렸던 또 다른 손들을 떠올렸다.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 남편의 굳은살 박인 손. 왜 그때는 이렇게 꽉 잡아주지 못했을까. 후회는 늘 늦게 도착하는 손님 같다.
"김 군..."
"네, 저 여기 있어요."
"손이... 참 따뜻하네. 고마워... 마지막까지."
내 손아귀에 미약하게나마 힘이 들어갔다. 김 군이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느껴졌다. 잡은 손의 온기가 흐려지더니, 다시 눈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번에는 끝없이 펼쳐진 꽃밭이었다.
향기로운 바람이 불어왔고, 저 멀리서 누군가 흐느끼고 있었다. 색동 가방을 멘 단발머리 여자아이. 그림자를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아주 오래전의 나였다.
나는 환자복을 벗어 던지고, 가벼운 흰 원피스 자락을 휘날리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발바닥에 닿는 흙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아가."
아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눈물 범벅이 된 얼굴. 나는 무릎을 굽혀 아이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괜찮아. 못 잡아도 괜찮아."
"정말? 그래도 돼?"
"그럼. 그림자 대신 꽃을 보면 되잖니. 너는 충분히 잘 달렸어."

나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평생 나를 괴롭혔던 조바심과 화해했다.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고, 꽃잎이 눈송이처럼 우리 주위를 맴돌며 날아올랐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이제... 쉬자꾸나."
병실 창문 너머로 달빛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기계음은 이미 멈춘 지 오래였다. 침대 위에 누운 내 얼굴은 깊은 잠에 빠진 듯 평온했다.
감긴 눈꺼풀 사이로, 눈물 한 방울이 투명한 구슬처럼 맺혔다가 베개 위로 톡, 떨어졌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긴 여행을 마친 여행자가 내려놓는 마지막 짐이었다.
방 안에는 달빛과 정적만이 가득 찼다. 완벽한 안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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